[채기자 칼럼]막힌 하수도, 막힌 신앙

하수도나 변기가 막히면 일상생활에 큰 불편이 따릅니다. 때로는 전문가를 불러야 하고, 큰 공사가 필요하기도 합니다. 우리 인생도 이와 같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이 막히면 관계가 단절되고, 삶에 심각한 불편이 생깁니다. 특히 가정에서, 부부 사이에서 소통이 막히면 마치 하수관이 막힌 것처럼 고통스럽고 피곤한 일상이 이어집니다.
우리말에 “싸움닭 같은 성격”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는 강한 경쟁심, 공격적인 태도, 쉽게 물러서지 않는 성향을 지닌 사람을 비유하는 말입니다. 이 표현은 사람의 성격을 동물에 빗댄 것으로, 매우 생생한 인상을 줍니다. 싸움닭 같은 성격이란? 이러한 성격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집니다. “말과 행동이 직설적이며 거침이 없다. 자극을 받으면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감정을 숨기지 못한다. 비판이나 경쟁 상황에서 방어보다는 반격을 택한다. 자존심이 매우 강하고, 무시당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자기 생각이 옳다고 믿으면 끝까지 주장한다. 논쟁에서 지기 싫어하며, 사소한 일도 자존심 문제로 확대한다. 상황에 따라 융통성이 부족하고, 독선적으로 보일 수 있다.” 이런 성향의 사람이 교회나 가정에 있다면 그 교회와 가정은 불편하고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사람이 속한 단체 역시 항상 시끄럽고 문제가 발생합니다.
싸움닭의 행동, 회의 중 반대 의견이 나오면 “그건 잘못된 판단입니다”라고 강하게 반박합니다. 지적을 받으면 “그건 그렇게 볼 수 없죠”라고 맞서며 방어합니다. 경쟁자가 나타나면 불타는 승부욕으로 반드시 이기려는 태도를 보입니다. 싸움닭 같은 성격은 강한 자존심, 즉각적인 반응, 논쟁을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를 가진 사람을 뜻합니다. 교회 안에서도 이런 성향이 있는 성도들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자존심이란 무엇인가? 필자는 때때로 이런 표현을 합니다. “저 사람은 하나님이 직접 오셔도 안 되는 사람이다.” 취재하다 보면 다양한 유형의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많은 사람이 이미 마음속으로 결정을 내린 후, 단지 목회자의 말이 자기 생각과 일치하는지를 확인하려고 목회자와 상담을 요청합니다. 그러나 반대되는 말을 들으면 마음을 닫고 교회를 떠나거나 실망한 표정을 보이기도 합니다. 결국 자신이 원하던 일들을 하고 시작하지만, 시간이 흐른 후에는 “왜 그때 목사님의 조언을 듣지 않았을까?” 하고 후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존심 vs 자존감 “자존심(自尊心)”은 말 그대로 자신을 존중하고 자랑스럽게 여기는 마음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보통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마음”, “체면을 중시하는 태도”로 사용됩니다. 자존심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지나치면 관계에 벽이 생기고, 부족하면 자기 비하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존심을 건강한 자존감으로 바꾸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화목의 사명, 하수도처럼 영적 관계가 막히면 신앙도 고통스럽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맡기셨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느니라.”(고린도후서 5:18) 또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이 직분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하고.”(고린도후서 6:3)라고 말씀합니다.
나는 하나님과 화목한 삶을 살고 있는가? 내 주변 사람들과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어떻게 감당하고 있는가? 이 말씀은 단지 교리적 설명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먼저 화목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랑과 화해의 복음을 세상에 전하라는 실천적 사명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신앙인은 그 누구를 막론하고 이 땅에서 빛과 소금의 삶을 살아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마 5:13~16)
-채석일 장로(예천백합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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