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군기독교연합회, 윌리엄 마틴 베어드 선교사 순회전도 132주년 기념예배 및 기념비 제막
-베어드 선교사의 사랑과 헌신,선교의 정신 계승과 복음의 성장-
[채석일 기자]예천군기독교연합회(회장 김한식 목사.풍성한교회)가 영남지역에 최초로 복음을 전한 윌리엄 마틴 베어드(한국명 배위량)선교사가 걸어왔던 선교 여정을 돌아보고 선교에 대한 비전을 품기위해 ‘제2차 순회전도 기념비 제막’과 함께 기념 예배를 드렸다.
1일 오전 11시 풍성한교회(예천 용궁면 소재.김한식 목사)에서 관내 교회 지도자 및 내.외빈 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행사는 1부 기념 예배,2부 축하 및 기념비 제막,3부 순례길 도보 행진 순으로 진행됐다.
1부 기념예배는 연합회 수석부회장인 김운수 목사(예천제일교회)의 인도로 부회장 김장호 장로(예천교회)의 기도,서기 권용숙 목사(보성교회)의 성경봉독(눅1:1-4)에이어 연합회장 김한식 목사의 ‘성도의 역사관’이란 제목의 설교와 배위량 순례단연합회장 호명기 목사의 축도로 마쳤다.

2부 기념비 제막식은 연합회 총무 안경진 장로(예천교회)의 사회로 김한식 목사의 인사 및 경과보고와 연합회 고문인 영주노회장 김윤기 목사(어신교회)의 축사 및 기념비를 제막했다.

풍성한교회에서 마련한 중식을 마친 오후2시,참석자 전원은 안경진 장로의 진행에 따라 베어드 선교사가 복음을 들고 향했던 노정(삼강대교-> 풍성한교회)을 132년전 베어드 선교사의 선교정신을 생각하며 찬양과 함께 걸었다.

이날 제막행사를 주최한 예천군기독교연합회 김한식 회장(풍성한교회 담임)은 인사말에세 “오늘이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찬송과 존귀와 연광을 올려드리며 이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헌신해주신 김학동 군수님이하 모든 교회 관계자분들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오늘 이뤄진 베어드 선교사의 이정표를 기점으로 우리 예천의 복음화가 파도같이 일어나고 예천군 또한 하나님의 크신 역사아래 부흥되고 발전함을 믿고 기도하겠습니다.”라고 했다.

김학동 예천군수는 “이날을 위해 수고해주신 김한식 목사님과 예천군기독교연합회 회원 모든분들의 수고에 감사합니다.오늘 세워진 이 기념비는 베어드 선교사님의 숭고한 발걸음을 기리고 후대에 전하는 역사적 증표이자 우리 예천이 가진 문화적 자긍심과 신앙적 전통을 다시금 되새기는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이 기념비가 지역의 정체성과 미래를 밝히는 하나님의 빛이 됨을 확신합니다.”라고 전했다.

한편 윌리엄 마틴 베어드(배 위량)는 윌리엄 마튼 베어드는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로 구한말 조선 평양에 현 숭실중고등학교와 숭실대학교의 모태가 되는 숭실학당을 설립한 설립자로 1891년 2월 부산에 도착, 1892년 5월 8일 제1차 순회전도를 경남 김해,마산,고성,통영 지역 해안선을 따라 실시 했으며, 제2차 순회전도를 그 이듬해인 1893년4월14일 부산 초량,동래,청도,대구,칠곡등을 거쳐 5월1일 예천 용궁에 도착해 5월3일 풍산,안동,의성,영천,경주를 지나 부산으로 향하는 여정을 실시했다.
또한 서울 마포구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는 한국의 복음화를 위해 헌신한 15개국 외국인 선교사 417명이 안장돼 있다. 묘원 제일 안쪽 왼쪽 끝부분 1평 남짓한 땅엔 윌리엄 베어드(William Baird·한국명 배위량) 목사와 그의 부인 애니 베어드(Annie Baird·한국명 안애리) 선교사 가족의 묘원이 있다. 1916년 6월 9일 53세라는 이른 나이에 주님의 품에 안긴 안애리 선교사의 묘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아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찬송가를 모르는 기독교인은 없을 것이다.
“멀리 멀리 갔더니 처량하고 곤하며 슬프고도 외로워 정처 없이 다니니/ 예수 예수 내 주여 지금 내게 오셔서 떠나가지 마시고 길이 함께 하소서.”(찬미가 1895년, 21세기 새찬송가 387장)
이 찬송시는 안애리 선교사의 작품으로 그녀의 개인적 비극과 신앙 여정이 절절히 담겨 있다. 고향을 떠나 남편과 함께 복음의 사명을 갖고 조선 땅에 온 지 3년째인 1893년 5월, 그녀는 사랑하는 첫 딸 낸시 로즈를 잃었고 1903년 1월에는 막내아들 아서 마저 영영 떠나보내야 했다. 이런 깊은 상실감과 슬픔은 찬송 가사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당시 힘없는 조선의 현실과 일제 강점기의 암울했던 시기에 고통받았던 한국 성도들에게 큰 위로와 공감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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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기자 다른기사보기